避暑철 斷想
지금은 그야말로 올여름 피서철의 피크타임인 듯 하다.
피서... 여행... 휴가...
7월하순경 부터 8월 초순경 까지는 마치 무슨 전쟁 피난길 가듯
전국이 피서행렬로 난리통이다.
피서 휴가 생각하면 좋은 추억도 많지만,
별로 추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많은게 사실이다.
그 첫번째가 고향인 충청도 어느 바닷가 해수욕장에서의 일이다.
결혼후 1-2년 지났을 즈음인 20년전인 87년경,
초등학교 동창들 몇이서 부부동반으로 서해안 태안 어디쯤 해수욕장을 찾았다.
기분좋게 텐트치고 놀이준비를 마친다음 첫날밤은 술도 한잔하며 그렇게 지냈고....
낚시를 좋아하던 나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텐트에서 일어나
준비해간 낚싯대를 챙겨 친구 서넛이서 바다낚시를 갔다.
백사장은 물이 빠지면 모래가 마치 아스팔트처럼 단단해져
차들이 그 위를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너도나도 백사장 위를 달려보는 것이었는데...
백사장이 얼마나 길던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은 가물가물할 정도여서
우리도 친구의 봉고차 한대를 이용해 멀리 해변 끝의 갯바위 부근까지 가서는
물빠진 모래 백사장 위에 차를 두고 낚시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을 낚시질 하다보니 어느덧 밀물때가 되어 물이 조금씩 차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야 이제 그만 텐트로 가자, 배도 고프고..." 하면서...
서둘러 낚시대를 걷어 차를 둔곳에 도착하니
백사장에 세워두었던 봉고차 바퀴에 1/3쯤 벌써 물이 차 올라 있는 것이었다.
빨리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친구가 운전석에 올라앉아 시동을 걸고 출발시키려 하자
웬걸 그 딱딱하던 모래바닦이 흐물흐물해져 바퀴가 앞으로 나가자를 않고
모래바닦으로 파고들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는 넷이서 밀고 당기고 아무리 해도 안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변의 피서객들까지 나서서 밀고 당겨보지만 차는 끄덕도 안하고...
그렇게 씨름하는 동안에도 물은 계속 밀려들어와 차는 절반 가까이 물속으로 잠겨 들어가고...
우리는 애가 타 발을 동동구를 뿐이었다.
차에 대한 상식이 부족했던 친구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찌 해서라도 차를 꺼내려고 계속 시동을 걸어 엑셀을 밟아댔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머풀러에서 하얀연기가 구름처럼 쏟아져 나오며 시동이 꺼져버렸다.
차 엔진에 바다물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저만치서 경운기가 하나 달려왔는데,
그건 바로 동네사람들이 바닷가에 놀러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온 것이었다.
그 동네 아저씨는 경운기를 몰고 바닷 속으로 들어가 봉고차와 3-4미터 거리에 세우고는
경운기에 있던 시커먼 고무 로프줄(짐싣고 묶을 때 쓰는)을 봉고차에 연결하여 끌어당기자
그렇게 끄덕도 안하던 봉고차가 서서히 물 밖으로 끌려나오는게 아닌가..
시골에서 농사일에나 쓰는 경운기가 그렇게도 유용하고 힘이 좋은지 그때 비로소 알았다.
그렇게 해서 안전한 장소에 봉고차를 꺼내주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는 경운기 아저씨들께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는데...
속으로 역시 고향인심은 좋은것이여...하는 생각도 잠시...
경운기 아저씨 하는 말
"수고비 줘야지, 경운기도 바닷물속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세차도 해야되고..."
순진한 우리는 각자 수영복 호주머니속에 가진돈 다 꺼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감사하다며 4-5만원 쯤인가를 드렸다.
하기야 해수욕장에서 소지품들이 있는 텐트는 까마득한 저 멀리에 있고
달랑 팬티만 하나입고 반대편 끝으로 낚시온 처지이니 그 만큼 돈이 나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들 인상이 돌변하는가 했더니 하는 말들이
"이거 순 거지들이구먼... 아니 바다속에 빠진차 건져줬는데 겨우 이거여?"
이때 비로소 우리는 `아 이게 뭔가 잘못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저씨! 우리도 같은 충청도 사람들입니다.
고마우신건 알지만, 짐이 저쪽 끝 텐트속에 있어서 더 많이 드리고 싶어도 그것밖에 없습니다"
라며 마치 무슨 큰 죄인이라도 된듯 사정 하자,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뭐라 뭐라 욕설과 험담을 해가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시골인심 참 흉해졌다는 것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려 왔으면
그정도 성의 표시에 좀 서운하더라도 내색하지 않는게 도리일 것 같은데 정말 야속했다.
당시에 4-5만원은 사실 그리 적은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기분은 기분대로 상한채 뙤약볕 모래사장을 약 30분간 걸어
텐트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멀던지...거의 죽는줄 알았다.
꼭두 새벽에 낚시하러간다고 출발했던 우리는
아침도 굶고 낮 12시가 다 되어서야 텐트에 도착해서는 모두 기진맥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조금 쉬었다가 다른 승용차 한대를 가지고 태안읍으로 나가 카센타를 찾으니,
바닷속에 빠진차 전문으로 꺼내주는 카센타가 따로 있단다.
물어물어 그 업소를 찾아가 상황설명을 했더니 사장님 하는말...
"거기요? 여름철이면 차 수십대 빠지는뎁니다. 8만원 주셔야 됩니다" 한다
도리없이 그렇게 8만원인가 주고 그 카센타 사장님을 모셔와서는 차 고치고....
물론 우리가 일을 저질렀지만,
은근히 믿었던 고향지역에서 그렇게 당하고 나니 모두들 기분이 상해
그날 오후로 휴가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난 그제서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딱딱하던 모래사장도 물이 들기 시작하면 갑자기 흐물흐물 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시골인심 정말 고약하다는 것을....
아마도 여름 휴가철 하면 떠오르는 가장 잊지못할 불쾌한 추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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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5-6년전쯤 친구랑 같이 동해안을 거쳐 설악산을 찾았을 때다.
여름 휴가철은 아니고 봄철이었던 듯 싶다.
친구랑 나는 등산을 좋아하기에
설악산 회운각이나 양폭산장 정도 까지만 올랐다 내려오자며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비 얼마인가 내고....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서 또다시 입장료, 문화재 관람료 2명분 지불하고 기분좋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후 비선대에 이르자 뭔가 붉은색 전광판 같은게 길게 걸려있고
글자가 돌아가는데.... "입산금지" 란다.
웬 입산금지?
처음 설악동 주차장에서나 아니면 입장료 살 때 그런말 전혀 못들어 봤는데...
기분 정말 꿀꿀했다.
입산금지 기간이라면 처음부터 주차장 표받을때 부터 입산금지라고 안내하고,
비선대 까지만 갈수 있으니 그래도 좋다면 표 사서 들어가라고 안내하는게 맞는것 같은데
주차비에 입장료까지 다 받아놓고 아무 문제없이 등산이 가능한 것 처럼 있다가 여기에서 입산금지라니....
정말 무슨 사기꾼에게 사기당한 듯 한 기분이었다.
우리 뿐이 아니고 비선대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불평들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온 후 참다못해 설악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불만을 올렸더니...
공원측 답변이 가관이다.
"여행을 가기전에 미리 정보를 알아보고 가야지 알아보지도 않고 여행을 시작한게 잘 못 아닌가?.
그리고 입구에 프랑카드로 입산금지 기간이라고 붙여놓았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안내하고 있으니
괜한 트집잡지 마라"
며 면박성 답글을 올린다.
입구 어디에 아마 주의깊게 보지않으면 못보는 장소에 프랑카드를 걸긴 걸었었는지...
그러자 내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반박댓글이 이어지고...
그렇게 그냥 지나고 말았다.
물론 처음부터 설악산 찾는 사람들이 모두다 알수있게,
"입산금지 기간입니다. 비선대 까지만 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시겠다면 입장료 내고 주차비 내시고 가세요"
이렇게 안내한다면 극소수의 사람들만 입장하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입장료 수입 줄어들고 그 공원지역내에서 영업하시는
음식점 기념품점들에도 심각한 지장을 미칠 것은 뻔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설악산에서 그래서야 될 것인가.
그래서 고맙게도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려면 인터넷으로
정말 사전에 목적지 정보를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대신에 그 후로는 설악산 단 한번도 안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이라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다시 가고싶지 않다.
그래도 산 좋아하는 나이니 언제 누가 같이 가자면 또 가게될런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