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추억속으로의 여행
겨울이 되면 소시적 고향에서의 겨울추억이 아련하다.
지금농촌이야 겨울에도 이것저것 할일들이 많다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정기 강제휴가철인 셈이었으니....
사랑방에 모여앉아 등잔불 아래 새끼꼬기,
가마니치기 같은 일은 그나마 건설적이었고 대부분 하는일이 그저 화투였다.
그 시절,
시골에 웬 노름방이 그리도 많았고 노름꾼들도 많았는지....
한 겨울동안 노름에 빠져 소, 논밭 다 팔아먹고
심한경우 마누라까지 잡혀먹는다는 말까지 있었으니...
우리야 고작해봐야 먹기내기 나이롱뽕이 전부였는데....
그 추운 겨울밤 한참을 동네 가게집까지 걸어가서는
과자 부스러기에 소주 막걸리 사오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가끔은 특별 이벤트라는게 있었으니....
건너마을 주막집에 가서 막걸리 퍼오기(?)였다.
점잖게 표현해서 막걸리 퍼오기지 사실은 훔쳐오는건데...
동네에서 장터 나가는 중간쯤 길가에
막걸리만을 파는 그야말로 주막집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업딩이네...
달빛이 조금 있던 어스름 컴컴한 밤,
나이롱뽕 결과 나하고 누군가 또하나 둘이서 당첨이 되어
막걸리를 푸러 건너마을 업딩이네로 접근했다.
고요한 달밤...
기척을 죽여가며 업딩이네 사립문을 들어서는 찰나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는게 아닌가...
우리는 깜짝 놀라 벽에 몸을 납작 붙이고는 석고처럼 굳어있었는데,
그 사람은 주막집 방안에서 노름하다가 잠시 소변보러 마루로 나온 모양인데
술에 얼근하게 취해서는 마루에 서서
그대로 안마당에다 시원스레 소변을 보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심하고는 술독을 놓아둔 사립문 옆 광처럼 생긴 곳으로 들어가
막걸리 항아리 술 조쟁이로 다가가 가져간 주전자를 항아리에 집어넣자
막걸리 퍼지는 소리가 `꾸루룩... 꾸루룩~~~` 하고... 속으로 얼마나 우습던지....
그렇게 막걸리를 큰 주전자로 두 주전자나 퍼가지고는 보리밭을 가로질러 달려오는데,
보리밭에 선 서릿발이 송곳처럼 날카로와 고무신 바닥을 찔러대니 발바닥은 얼얼하고...
간신히 친구들이 모인 사랑방에 도착해 김치를 안주삼아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지금이야 웃으며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도둑질, 절도행위었으니...
또 하나는,
산들로 다니며 산토끼나 꿩, 멧비둘기, 청둥오리 잡아먹기였다.
장날 몰래 사온 싸이나를 잘게 쪼개서는
콩에 구멍을 파 그 속에 넣은 후 초댐을 해서 산속 밭에 뿌려두어 꿩을 잡거나,
토끼덫을 놓아 산토끼 잡아먹기...
물고기 아가미에 싸이나 넣어두어 청둥오리 잡아먹고,,,
볍씨에 다이메크론 이라는 제초제 농약을 뭍혀 논에 뿌려놓아 멧비둘기 잡아먹는 일 등이었는데,
이 또한 지금은 생각도 못할 불법 밀렵행위로 크게 처벌받을 일이지만
30-40여년전에는 그게 처벌대상인지도 몰랐었다.
그런 추억들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시골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였던것 같다.
전기가 들어오니 텔레비젼이란게 생겨나 이집저집 사랑방을 옮겨다니며 화투할 일도 없고,
밝은 불빛아래 밤에도 뭔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새마을운동 바람이 일면서 노름 안하기 운동도 벌어지고...
낮에는 하천정리 같은 일거리를 주어 대략 1주일이나 열흘 단위로 목돈을 쥐어주니
시골 사람들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흰 고무신에서 검정고무신으로...
검정고무신에서 운동화로...구두로....
지금 돌이켜 보면, 농촌 사정은 차라리 그때가 가장 좋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