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찰관의 감동 수기
저는 최 일선 도내 오지 경찰서중에도 오지인 3도(경북,강원,충북)
접경에 위치한 시골 영춘파출소에 근무중인 시골경찰관입니다.
야간 상황근무를 하면서 문득 얼마 전 할머니 한분이 생각나
두서없이 소개코자 합니다.
요즈음 농촌에 고령인구가 늘면서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자식들이 잘 살고 자주 찾아오는 독거노인들은 그래도 어깨를 펴고 다니지만,
그렇지 못하거나 자식이 없어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 전 순찰 중 추운날씨에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 한분을 보았습니다.
그 할머니는 날씨가 많이 추웠던지 옷깃을 머리까지 올리고
몸을 잔뜩 움추린 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승강장내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내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속으로 “곧 버스가 오겠지” 생각하고 순찰차를 타고 지나쳐
한 10여분을 갔을까...
도로 언덕 중간에 버스가 서있고 버스기사는 발이 시려운지
계속 움직이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순찰차를 세운 후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언덕길에서 버스가 고장나
회사에 전화를 하는 중이라고 하여 버스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 3분이 몸을 움추린 채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기사에게 순찰차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한 후
할머니 3명을 순찰차에 태웠습니다.
할머니들이 사시는 동네는 너무 오지라
하루에 시내버스가 4번 가량 밖에 다니지 않는데다,
시내버스 대차가 올 때까지 추운 차내에서 계속
기다려야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속으로 “내가 참 좋은 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목적지까지 가면서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승강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할머니들에게 “아까 고장나서 서 있던 시내버스가
다시 돌아서 나가는 것인가요?”물으니 맞다고하여,
목적지 도착 후 할머니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커피한잔 마시고 가라는 것을 뿌리치고 순찰차를 몰아
약 30분 가량이 지난후 시내버스 승강장에 다시오니,
그 할머니는 그 동안 더 추웠는지 바람을 피하여
시내버스 승강장 안쪽 구석진 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가가 할머니 어깨를 흔들며,
“할머니 시내버스 기다려요?” 라고 물으니
한 쪽 다리가 불편하셨던지 양손으로 다리한쪽을 붙잡고 일어서시면서,
“시내버스 올 때가 훨씬 지났는데 기다려도 오지않네”라고 말을 하여,
“할머니 시내버스 의풍리 가다가 언덕길에 고장이 나서 서 있어요, 버스 안 올지도 몰라요” 라고 말을 한 후,
다시 할머니에게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니
“다리가 아파 영춘면 의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야 되는데, 너무 늦으면 문을 닫는데..” 라며 말끝을 흐려,
할머니에게 순찰차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일제시대의 무서웠던 순사생각이 났는지
제복 입은 저를 경계의 눈초리로 보는 것을 직감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순찰차 뒷문을 열고는 얼른 타시라고 하자
밖에서 추위에 많이 떨었던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재촉하는 제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순찰차에 올라앉았습니다.
할머니를 태우고 영춘면으로 나오는 도중에
“몸이 아프시면 자제분들에게 연락을 하여 병원에 가시지 그래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말을 하니,
할머니가 한참동안 차창 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하는 말이,
“남편은 광산에서 일을 하다가 오래전에 죽었고, 남매가 있었는데 아들 하나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딸은 시집간 후 처음에는 자주 오다가 먹고 살기 힘든지 연락이 되지 않은지가 10년이 넘었어”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괜한 말을 했구나 후회하며 도중 화제를 바꿔
“할머니! 동네에 친구분들 많아요?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니,
“많이 죽고 이제 몇 명 안 남았어, 만나면 다 지들 자식자랑 하느라고 나는 상대를 안해줘서 거의하루 종일 혼자 있어, 면에서 한달에 30만원가량 주는 걸로 근근이 살지 뭐”라고 하여,
“승강장에서 얼마나 기다리셨어요?”라고 묻자
한시간 가량을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는 안쓰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 영춘 의원에 도착하여
순찰차에서 내려 할머니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며
“할머니 다 왔어요, 치료받으시고 파출소로 오시면 다시 태워 드릴께요”라고하자,
하시는 말씀이“나랏일을 하는 사람에게 늙은이가 불편을 주면 되느냐”며
한사코 손사레를 치시며 바지 속으로 손을 넣더니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몇 장을 꺼내는 것을 보고는,
“할머니! 요즘 경찰은 예전같지 않아요, 돈꺼내면 안돼요”라고
웃으면서 말을 하고는, 파출소로 돌아와 근무 교대를 한 후
할머니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끝내 오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가량이 지나 그 할머니를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무실 근무를 하는 도중,
사무실 밖에 할머니 한분이 귤 한 상자를 끈으로 묶어 등에 지고
파출소 쪽으로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문을 열고 나가서 보니
안면이 있는 할머니 같아서
“할머니 어디서 많이 보신 분 같아요”라고하자 대뜸
“에이 젊은 사람이 정신이 없기는, 저번에 영춘의원 까지 태워줬잖아”라고
하는말을 듣고는 머쓱하여
“아 예!”라고하며
“그런데 파출소는 무슨일로 오셨어요?” 라고 하니,
“그때 너무 고마워서 왔지” 하며 등에 지고 있던 귤상자를 바닥에 내려 놓으며,
“영춘은 귤이 너무 비싸,
오늘 단양장이라 장에 가서 사왔어, 심심할 때 까먹어”하고는
다리를 절며 부리나케 파출소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가면서, “할머니 제가 모셔다 드릴께요”라고하자
“에이 그러면 안된다”고 하며 완강히 거절하여
귤 상자를 바로 되돌려 주지를 못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약 한 시간가량이 지난 후
예전에 할머니가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곳의 동네 이장에게 전화를 하여
할머니 인상착의를 물으니 집을 가르쳐 주어
순찰차에 귤을 싣고 할머니 집을 찾아가 문밖에서
“할머니 계셔요?”라고하자 할머니는 방안에서 화로위에 올려 있는 청국장을 뜨며
“누구세유”라고하며 문을 열어주어 "파출소 경찰입니다”하고는,
“귤은 할머니 심심할때 드세요”하며 귤을 마루에 올려 놓고
신발 신은 채로 마루에 걸터앉자,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입가를 훔치며
“혼자 밥 먹던 참이였는데 들어와서 청국장에 한술 뜨고 가라”고하여
몇 번 거절하다가 할머니가 자꾸 재촉하고 마침 출출하던 차에
방안에 들어가 할머니와 마주 앉아
할머니가 주시는 밥에 화로에 끓고 있는 청국장을 한 숟가락 뜨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습니다.
밥 먹는 도중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평상시는 밥맛이 없어 반 그릇 정도 가지고 요기만 하는 정도 였는데,
오늘은 참 밥맛이 좋다”라고하며 밥 한 그릇을 다 드시고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앉아서 밥 먹어 본게 언제인지 모르겠네,
같이 밥먹어 줘서 고맙다”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속으로 정말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정이 그립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생각이 들어
“할머니 앞으로 자주 찾아 와서 말벗 해 드릴께요”라고하자
“일부러 오지는 말고 지나가다가 들려”라고 하는 것을
뒤로 한 채 나오면서 뇌리에 범죄예방도 중요하고 범인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령화시대에 점차 늘어가는 독거노인들의 시린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앞으로 계속 순찰중 시간을 내어 틈틈이 독거노인들의 시린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