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지 열매
집앞 공원길을 걷는데 보도블럭위가 마치 물감 들인듯 새까맣게 물들어 있다.
위를 올려다 보니 새까맣게 익은 벗지 열매가 알알이 탐스럽다.
손 닿는 가지 끝 하나를 잡아당겨 벗지열매를 따 입에 넣어본다.
문득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꿈많던 중학생 시절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조용하고 평화스럽던 내고향 안살메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후미진 살목산 아래
5집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보광골이 있었다.
앞마을 뒷마을 보리밭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마침맞게 익은 마늘밭에서도,
마늘쫑이 길게 올라와 혀를 빼물고 있을때 쯤이면,
살목산 벗지도 새까맣게 익어간다.
친구 응식이는 나보다 나이도 두 세살 많은데다 할아버지 항렬 이었지만...
어릴적 우리에게는 그저 친구일 뿐, 항렬도 나이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난 중학생 때부터 시골 마을을 떠나
군 소재지 읍내로 유학을 떠났었다.
버스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읍내에서 하숙생활을 하다가
주말이면 집에오곤 했었지만...
친구 응식이는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오면 응식이를 찾았다.
응식이네는 중말 우리집에서도 약 오리길을 더 들어가.....
쉬엄 쉬엄 걸어서 가면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어떤 때는 자전거를 타고... 어떤 때는 걸어서 응식이네를 가면
우리는 탐스럽게 익은 벗지열매를 찾아 살목산을 올랐었다.
회색바지에 군청색 데드롱 기지의 반팔이 교복이던 시절...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자 마자 예산읍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광시행 버스에 몸을 싣고 한시간 가량 걸려 광시에 오면,
달음박질 하듯 30여분을 부지런히 걸어 집에 왔었다.
어머니께 "저 집에왔어요" 하고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는
교복을 입은 채 벗지를 담을 주전자 하나 들고
응식이네로 한달음에 달려가 함께 산에 올랐었다.
중학교에 가지못한 응식이는 속으로 날 많이 부러워도 했으련만...
교복 입은 날 정말 스스럼 없이 반겨주곤 했었다.
응식이는 참 신기하게도 그 넓디 넓은 살목산의 벗나무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어느 벗지는 달고 어느건 쓴지 신지 다 알고 있었다.
응식이의 안내에 따라 노란색 양은 막걸리 주전자 하나 들고
살목산 여기 저기를 옮겨다니다 보면 입술과 혓바닥은 진 보라색으로 물들고
교복도 여기저기 벗지물이 들어 얼룩져있곤 했었다.
천안에 사는 응식이 친구......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벗지 익은 이때 다시한번 손잡고 살목산을 올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