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후기
“샌베노! ” 몽골식 인사말이다.
2012년 여름의 몽골여행기를 소개코자 한다.
한반도의 10배 면적을 가진나라....
게다가 고작 인구는 300만 명도 미처 못되는 나라...
국토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국가...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했던 초 강대국....
우리에게도 치욕의 역사를 남겨준 나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국가로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가
소련연방의 해체와 함께 시장경제 체제로 민주국가가 된 나라...
7. 25 (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해와 중국을 가로질러 징기스칸 공항까지 3시간 가량 걸린다.
어느 나라를 가던지 맨 처음 만나는게 입국심사 공무원들...
그 나라의 첫인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골의 입국심사 공무원들 별로 상냥스럽거나 친절하다는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공항 입국수속 절차를 마치고 몽골땅에 들어가 만나는 몽골인들....
남자들은 하나같이 배들이 모두 임신8개월쯤 되어보인다.
양고기 같은 육식위주의 음식문화인데다
운동 같은 건강관리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일까???
마중나온 미쓰비씨 델리카 차량과 기사 그리고 가이드....
첫 상면을 하고는 차에 올라 울란바타르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도심지는 그야말로 차들로 생 난리통....
도로사정도 안 좋은 데다 배수시설마저 안되어 있으니
도로가 물바다로 변해 엉망이다.
교통체증도 심하고 교통질서도 엉망이다.
머리부터 먼저 들이미는 차가 우선이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는데 혹시 여기도 지구온난화 영향은 아닐까...
몽골은 대형 외제 RV차들이 즐비하다.
미제 허머에서 부터 일제 토요다 랜드크루저, 렉서스 등등...
갤로퍼나 렉스턴 같은 차들은 소형차에 속할 정도로 대형차들이다.
하지만 트럭과 버스들은 거의가 국산,,,.
운전대도 제각각...어느차는 오른쪽 어떤차는 왼쪽...엿장사 맘대로다.
이 나라는 아직 전차도 다닌다.
레일이 아닌 자동차 바퀴로 굴러가는 버스형 전차 신기하다.
또 하나 신기한게....
도로변에서 자가용 승용차들을 향해 태워달라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자가용 영업행위를 인정해주기 때문이란다.
실제 그런 규정이 있는지...
아니면 규정은 없지만 그냥 묵인해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젊은 여성들도 겁없이 지나는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몽골 가이드 아가씨한테 혹시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때로는 자가용차량이 강도로 돌변해서 사건이 발생하고 종종 뉴스에 나오기도 한단다.
몽골 시내로 들어서 곧바로 자이승 기념탑과 이태준 기념관으로 직행했다.
소련과 몽골이 2차대전 때 연합군으로 싸운 것을 기념하여
울란바타르 시내의 산위에 세웠단다.
그리고 이태준 선생님의 유적지....
옛날 교통편도 안 좋을 때 어떻게 이역만리 몽골까지 와서
몽골왕의 주치의가 되고 독립운동을 했을까?
몽골 여행사 사장님의 안내로 저녁식사차 뷔페식 식당에 갔다.
고기와 소스를 접시에 담아 가져가면 커다란
불에 달군 쇠판위에 올려 볶아준다.
식사와 함께 알콜도수가 50도가량 되는 보드카를 반주로 첫날 신고식을 치렀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첫날 잠자리에 들었다.
7.26(목)
단잠을 자고 아침일찍 일어나 호텔밖으로 나가봤다.
마침 호텔 앞에는 새벽 반짝 시장이 들어서 시끌벅적하다.
시장모습 사람 사는 모습은 우리나 비슷하다....
당근, 파, 양배추, 명이나물 같은 채소들이 싱싱하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은 만달고브 사막지역을 중심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델리카에 몸을 싣고 울란바타를 빠져나간다.
이정표에는 만달고비까지 285km란다.
황량한 초원길을 시속 60-80km로 달려도 5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
잠시후 차가 초원으로 진입하자마자 감탄사만 절로 나온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양떼 소떼들.....
흰 구름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이다.
문득 진한 허브향이 코를 찌른다.
알고보니 초원에 깔린 풀들이 허브라니...
동물들이 밟고 지나가면 향이 더욱 진동한다.
그렇게 끝없이 광활한 초원을 달리다 점심때가 되어 초원 한가운데에 차를 세운다.
볼일도 볼겸 식사도 해결하기 위해.....
남자들이야 돌아서서 보면 되지만 여자는 참으로 解憂所 문제가 난감하다.
하는 수 없이 일행 가운데 여자한분과 몽골 가이드 아가씨가 저만치 걸어가서
서로 커다라 보자기로 가려주고 고민을 해결한다
이어서 차 그늘에 앉아 초원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정말 맛있다.
후식으로 끓여 마시는 커피 맛도 일품....
몽골의 광활한 초원 한가운데서 끓여먹는 라면과 커피,,,
경험해본 사람들만 그 맛을 알리라.
그렇게 잠시 망중한을 줄기는 사이 기사 아유씨가 도마뱀 한 마리를 잡아왔다.
땅과 거의 구분이 안될 정도로 보호색을 띄고 있다.
혹시 물지 몰라 꼬리를 잡아 사진도 찍고 한동안 데리고 놀다 보내주었다.
초원에도 자동차길이 있다.
이리저리 얼키고 설켜 어느게 어느 곳으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몽골인 기사는 잘 찾아간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바르가징 촐로라고 하는 바위지대에 도착했다.
염소그림 같은 것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약 1억년전에 고대인들이 바위에 그린 그림들이란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바위계곡 사이에 흔적만 남은 파괴된 절터...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타고와 마치 봉이김선달처럼 입장료를 받는다.
예전 종교를 허용치 않던 강력한 사회주의체제 시절에
소련군들이 들어와서 몽골 스님들 수십여명을 학살한 슬픈전설이 있는 곳이란다.
하지만 절터보다도 주변 바위 경관들이 멋지다.
계곡에 들어가니 몽골사막에서 거의 볼 수 없던 포플러 같은 나무들이 계곡에 자라고 있다.
계곡이 습한 때문인지 키가 웃자란 천연허브들 또한 무성하고 향도 더 진하다.
이것저것 허브 풀들을 한 묶음 꺾어 차에 싣고 나니 차안에 허브향이 진동한다.
저녁무렵 어렵게 에르덴우하 여행자 캠프를 찾아 들었다.
몽골인 기사양반...
신기하게도 그 넓은 들판에서 어떻게 캠프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지....
처음 경험해 보는 이역만리 몽골사막 한가운데 게르에서의 잠자리....
게르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의 운치가 그만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님이 "窓外三更雨요... 燈前萬里心" 라고 시를 남겼는데
아마도 고운 선생님의 심경이 이랬을 것이다.
7.27(금)
캠프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 2시간가량을 걸려
만달고브라는 지방 소도시에 도착했다.
우리로 치자면 도청소재지쯤 된단다.
야트막한 산위에 머린호르이라고 하는 거대한 마두금상이 세워져 있다.
그 옆으로는 날개달린 비마상도 있고...
말 경주에서 내리 몇 번 우승한 명마를 기리기 위해 세웠단다.
유목민 문화답게 말을 숭상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다시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잠깐 쉬는틈을 이용,
들판에 지천으로 깔린 부추를 몇 줌 뜯었다.
그리고 중간에서 만난 허름한 게르식당에 들러 준비해간 초고추장에 무쳤다.
초원에서 맛보는 야생부추 초고추장 무침...
향이 너무 진해 탈이지만 맛이 기가 막히다...
몽골의 젊은이에게 양 한마리에 얼마나 하는지 물어보니 20만원 쯤 이란다.
초원 여기저기에 널려있는게 양인데 생각보다 싸지 않다.
몇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차강소오라 라고 하는곳....
바위처럼 보이지만 딱딱한 바위가 아닌 진흙들이 굳어져 만들어진 절경...
칼새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진흙절벽 틈새나 그곳에 구멍을 뚫고 집을지어 산단다.
에르덴 우하라는 캠프에 짐을 풀고 식당에서 낮에 잠깐 쉬면서 뜯은
야생부추로 만든 부추전을 만들어 먹어본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이태리 분들에게도 반쪽 나눠주었다.
한국식 피자 맛보라고...
밖을 보니 또 비가 내린다. 쏟아질 듯 찬란한 별보기를 기대했건만
몽골초원에서의 별보기는 오늘도 꽝....
사막지역에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사람들도 영문을 모르겠단다.
7.28(토)
밤사이에 비는 그쳤다.
저 멀리 나무들이 보이는 곳 까지 아침운동 삼아 걸어갔다.
사막에서는 바로 가까이 보이는 듯해도 막상 가려면 거리가 멀다.
약15분가량 걸려 당도해보니 조그만 물웅덩이 오아시스가 있고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오래된 듯한 나무들이 몇 그루 서있다.
주변으로 물이 닿지 않는 곳에는 이미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 서있거나 쓰러져 있다.
몇 년 후에는 지금 살아있는 나무들마저도 저렇게 죽어 말라버리지나 않을까....
캠프에서 아침후 길을 떠난다.
계속 비가 내린탓인지 늪지도 많아지고 길 사정이 안좋다.
걱정하던대로 차가 진흙길에 빠졌지만 노련한 기사덕에 탈출 성공....
다시 차를 달려 초원을 지나는 길에 말들이 매어져 있는
어느 유목민 게르를 발견 무작정 찾아들었다.
게르 주인이 내어준 아름이라고 하는 양젖으로 만든 음식,
한입 베어물어 보니 내 식성엔 맞지 않는다,
그래도 전혀 안먹으면 주인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것 같아서 억지로 두개 먹었다.
말좀 태워달라고 하자 얼마간의 비용을 요구했다.
합의를 하고 준비될 동안 우선 게르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들어갔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마유주(아일락)에 수태차에...아르히 라고 하는 맑은술까지 내준다.
그리고는 하얀색 치즈덩어리 같은 아롤인가 하는것도 주는데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다.
그래도 억지로 2개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몽골인들은 역시 다르다.
기사와 가이드는 신기하게도 맛있다며 잘 먹는다.
다시 만달고비에 도착하니 지방차원에서의 나담축제가 열리고 있다.
경기장 주변으로는 각종 상인들이 장사에 여념이 없는게
우리네 축제현장과 별반 다를게 없다.
전통복장에 활쏘기 하는 사람들...
한껏 멋을 내고 구경나온 처자들....
예전에는 말들을 타고 왔겠지만
이제는 차나 오토바이들을 타고 유목민들이 참가하러 온단다.
만달고비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몇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흐가지링 촐로라고 하는 곳...
드넓은 평지가 점점 바위지대로 바뀌더니....
마치 달나라에 온듯....
기기묘묘한 바위군상들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지역에 가득하다.
이곳은 아직 국립공원 지정마저 안되어 있다는데...
다행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를 않아 보존이 잘 된듯 하다.
신의 작품인지..... 여기를 봐도 저기를 돌아봐도 감탄사....
우리의 금강산 설악산에 못지않은 비경이다.
해는 넘어가는데 여행자 캠프를 찾기 어렵다.
이 사람들 여행자 캠프는 운영하다가 영업이 잘 안되면 쉽게 접기도 하고...
또 다른 곳으로 금새 이동하기도 해서...
지난해 있던 캠프자리를 기억하고 찾아가면
휑하니 바람만 불고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지 유목민에게 물어물어 어둑어둑할 무렵
어렵게 캠프를 찾아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해결....
오늘 저녁은 다행히 비가 내리질 않으니 별을 볼 수 있단다.
하지만 달 때문에 별 총총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쉽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몽골초원에서의 별보기는 성공....
7.29(일)
아침 일찍 기상하여 캠프 뒤 바위 군락지로 산책을 나갔다.
공기는 청량하고 상쾌한 허브향이 코를 자극한다.
캠프식당에서 아침을 사먹고 서둘러 출발한다.
전날 시간이 늦어 다 둘러보지 못한 캠프주변 몇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다.
엄마의 자궁바위라는 곳....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엄마의 자궁에서 갓 나왔을 때처럼
깨끗해지고 순수해져서 다시 태어난다는곳...
그리고 마주 뚤린 바위동굴 등등....
약 1시간가량 주변을 돌아보고 이흐가지링 촐로를 출발,
한동안 초원을 달리다가 점심 해결차 평원한가운데 차를 멈췄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거친사막 평원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
매미만한 귀뚜라미.... 보호색을 띄고있어 눈에 잘 뜨지를 않지만
뭘 그리도 많이 드셨는지 배가 불룩하고 살이 통통해서 잘 도망가지도 못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넘들이 여기저기 풀잎에 붙어있다..
몇마리 잡아서 가지고 놀다 보내주고 다시 출발...
몇 시간을 달려 바얀차간솜 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솜은 우리말로 면 또는 군 소재지 급 정도 되는 마을을 칭하는 것이니
바얀차간 마을 이라고 이해하면 될듯하다.
약260여 가구에 2,000명 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초등학교 학생수가 약200명 가량 된단다.
김경진 선생님과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인데다
지난봄에는 그 학교 교장선생님 포함 4명이 초청되어 한국에도 다녀왔단다.
울지 바야르 라는 엄청 체구가 크신 교장선생님이 마중나와 있었다.
이곳은 한번교장은 영원한 교장....
10년째 이곳의 교장을 맡고 있단다.
하지만 웃는 표정이 무척이나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는 분...
교장실에 들어가니 교장선생님 외에도 몇분의 선생님들이 더 나와 계셨고,
탁자에는 초코렛과 아일락, 보드카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일락 대접에 이어 상호 인사소개와 궁금한 점들에 대한 질문 답변이 이어졌다.
몽골에는 문제 학생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런 학생이 왜 있느냐고 되묻는다.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하는 문제들 또한 없단다.
교사의 권위가 절대적이라 감히 교사의 지시에 거역하지 못한단다.
이곳에서 교사는 누구로 부터도 존경의 대상이란다.
초등학교지만 학교 내에 기숙사가 있어 집이 먼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가끔 집에 가고...
10킬로 이내의 좀 가까운 거리 아이들은 말 타고 학교에 온단다.
가난하고..... 학교시설도 낙후되었지만,
교사에 대한 권위나 문제학생이 전혀 없을 정도로
순수한 모습들이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의 보드카 공세가 시작되었다.
몽골의 주법은, 그날의 모임 주재자 또는 집주인(host)이
일행가운데 한명을 지정하면 지정받은 사람이 술병을 들고
이사람 저사람 돌아가면서 술을 따르는 식이다.
한잔 두잔 받다보니 벌써 취기가 얼큰하다.
이어서 방문한 어느 아주머니 댁...
예전에는 학교선생님으로 근무도 했었다는 분...
허름한 집이지만 양탄자가 깔린 방안에 일제 샤프 평면TV도 있고
제법 문화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여기에서도 초콧렛 과자와 아일락 공세가 이어지고....
마당에서는 주인아주머니가 오리지날 허르헉 양고기 요리를 준비하신다.
양고기에 보드카에 얼마를 마셨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마시고는 취해 잠들었다...
7. 30(월)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안좋다.
과음 과식에다....새벽기운이 추웠는지 감기기운도 있다.
주인집에서 준비한 아침조차 거의 먹지도 못한채 차에 올랐다.
막 출발하려는데 몽골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단다.
만나고 가야 된다며 잠시 기다려 달란다.
부랴부랴 차를 몰고 나타난 교장선생님 부부가 우리를 배웅한단다.
전날 술자리에 같이했던 체육선생님 부부.... 집주인 부부....
아이들까지 데리고 총출동이다.
100미터쯤이나 따라 나와 배웅해주겠지 했는데 계속 따라온다.
아마 10킬로 가량은 따라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한참을 떠나는 사람들과 배웅하는 사람들이 함께 초원을 달려
이윽고 초원 한가운데 차를 멈추고 송별연이 벌여졌다.
중국 당시인 왕유(王維)의 유명한 이별시인 양관곡이 생각난다.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봄비는 도시의 먼지를 씻어주고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유색신) 뜰 앞 버드나무 푸르름이 새로워라.
勸君更進一杯酒(권군경진일배주) 술 따라 그대에게 한 잔 더 권하노니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길 떠나면 더 이상 벗 없으리
가면서 먹으라고 초코렛도 한 아름씩 건네주고....
이별주라며 보드카를 또 다시 권한다.
극구 사양도 해보지만 소용없다.
무조건 마셔야 된다면서 권한다.
아침 해장에 연거푸 그 독한 보드카를 두어잔이나 마셨더니
또다시 취기가 오른다.
이별사진도 찍고 서로가 한번씩 안아주는 이별포옹도 하고
그렇게 성대한 송별연을 마치고 출발했다.
아...
문득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도 옛날에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지 않은가?
먼길을 떠나는 가족이나 진정으로 가까운 친구를
멀리 동구 밖까지 마중나와 이별을 하던....
아름다운 추억과 가슴벅찬 환대를 가슴에 새기며 출발했다.
몽골여행 7일가운데 오가는 2일을 빼고
실제 머무른 5일중 3일동안 비가 오락가락...
겨우 2일만 맑은 날이었다.
비가내리는 가운데 테를지라는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관광 인프라가 제법 갖춰져 있는 곳...
여기저기 여행자 캠프가 들어서 있고 호텔도 보였다.
캠프를 한군데 골라 식사 주문과 함께 라면도 끓여 먹고는
우중임에도 승마체험에 나섰다.
여기저기 많은 한국인들이 보인다.
모두가 말 타러 온 사람들인 듯싶다.
그렇게 말타기 체험을 끝으로 몽골여행을 마치고
귀국준비차 울란바타르 시내로 향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 접어들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도로는 흙탕물이 가득한데다 교통지옥이다.
도로에 배수시설이 안되어 물바다를 이룬 도로사정은 엉망이고...
차들은 이 와중에서도 서로가 먼저 가려고 난리다.
7.31(화)
아침4시에 모닝콜이 울린다.
졸린눈을 부비고 일어나 부지런이 가방을 싸고 나가니
호텔마당에는 벌써 5일동안 정든 델리카와 기사, 가이드 아가씨가 나와있다.
새벽 이른시간이라 교통체증 없이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
모두함께 기념사진을 찍고....출국수속을 마친후 몽골을 떠났다.
* 그냥 주절 주절
짧은기간의 몽골방문 이었지만,
몽골인들의 반한감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시내에서 가장많이 눈에 띄는게 가라오케였다.
거의가 한국인들이 운영하거나,
한국인에게 배운 몽골인들이 하는거란다.
여기저기 호텔(우리믜 모텔급 정도)마다 어김없이 가라오케가 있었다.
우리의 노래방과 유사한 경우지만,
20대 젊은 아가씨들이 도우미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 도우미지 돈만주면 얼마던지 자기 취향에 맞는 몽골아가씨를 골라
호텔방에서서 성매매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돈 때문에 그들도 몸을 팔고 한국인에게 웃음을 파는 것이겠지만....
맘속으로는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같이 간 한국인 말에 의하면,
호텔 여종업원이 "한국인은 다 그래요?" 하길래...
왜요? 하고 물었더니
"어째서 오는 사람마다 전부 몽골여자들을 데리고
호텔방으로 올라가느냐" 고 묻더란다.
과거 70년대...
일본인 남자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어김없이 우리의 젊은 여성들, 심지어는 여대생까지...
며칠동안을 현지처 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관광도 하고
밤으로는 섹스 향락을 즐기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의 젊은여성들이 가련키도 하고...
돈 몇 푼에 외국인한테 몸을 파는게 밉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일본넘들이 좋게보일리가 없었다.
어디 호젓한데서 단둘이 만나기라도 하면 때려주거나
망신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몽골인들 심정이 그럴것이다.
지구촌 어디를 가거나 유흥 향락지역에서는 어두운면들이 생겨난다.
마약, 섹스, 폭력단 등등....
그러니 순수한 사람들을 범죄에 물들게 하고..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 오는 것이다.
제발 한국인들 외국에 나가서 가라오케 같은 그런 사업 하지 말고
레스토랑 같은 건전한 사업들이나 하길...
그리고,
현지여성이 질문했듯....
한국남자들은 모두가 그 짓하러 오느냐는 질문을 받지 않기를...
광활한 초원.....
순수한 사람들.....
티없이 맑은 순수함이 계속 이어지기를....
(몽골 항로)몽골의 울란바토르(Ulaanbaatar)와 러시아의 모스크바(Moscow) 항로는 서해를 지나고 광활한 중국 대륙을 넘는다. 이 항로의 연장 선상이 유럽의 중심 도시로 이어지는데 현재 인천을 떠나 유럽으로 가는 최단거리 항로다. 또한 이 항로는 일본에서 중국, 유럽으로 가거나 그 반대 경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톈진, 베이징에이어 네이멍구 지역 통과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곧바로 서해로 나간다. 한가롭게 떠 있는 고깃배들 위로 잠시 비행하다 보면 한국의 비행정보 구역이 끝나고 중국 영공에 접어든다. 여기서 항공기는 약간 오른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왼쪽으로 육지가 보이면 중국의 산둥(山東)반도 끝자락이다. 우리나라 옹진반도와 가장 근접한 지역으로, 중국에서 서해를 향해 보면 가장 동쪽인 곳이다. 항공기는 왼쪽으로 산둥반도를 지나 계속 바다 위를 난다. 그리고 중국의 육지에 닿는 곳이 서해에 연한 톈진(天津)시.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시의 관문이다.
몽골행 항공기는 톈진 상공을 통과해 내륙으로 진입한 후 기수를 북으로 돌려 올라간다. 한가로운 농촌지대를 지나 계속되는 평야지대를 비행하면 나타나는 곳이 베이징이다. 중국의 수도로서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중국의 정치·문화·관광의 중심지. 동·서·북쪽은 산악지대, 남쪽은 평야지대로 50만 년 전에 베이징원인이 살았고 3천여 년간 역대 왕조의 도읍지 또는 주요 도시로 이어와 현존하는 역사유적 박물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지상 최대의 인공건축물 만리장성을 지나면 네이멍구자치구 상공이다. 구도(區都)는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중국 땅이지만 몽골어로 ‘푸른 성’을 의미하는 이 도시는 청나라 때부터 정착 생활을 시작한 몽골의 유목민이 세운 도시로 해발 1천 미터인 몽골고원의 입구이기도 하다.
고비사막을 넘어서 울란바토르로
네이멍구자치구를 지나면 몽골로 접어든다. 몽골의 입구는 끝도 없이 펼쳐진 고비사막. 항공기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회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모래 언덕이다. 그러나 고비사막에는 모래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막과는 달리 초원과 호수, 방목지가 어우러진 반사막으로 야생마, 낙타, 고비 곰 등 희귀한 야생동물과 풍부한 천연자원이 존재한다. 드문드문 보이는 초원과 산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고비사막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몽골의 공식 명칭은 몽골리아(Mongolia)로 수도는 울란바토르다. 인구는 250여 만 명이며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전체 국민의 약 4분의 1인 68여만 명이 살고 있다. 북쪽의 러시아와 동·서·남쪽의 중국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심장으로 서쪽에는 1천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알타이 산맥이 위치하고 있고, 남쪽에는 사막, 나머지는 평지가 공존하는 나라다. 수도인 울란바토르가 해발 1천350미터에 있으며, 국토 전체의 평균 해발이 1천580미터인 고산지대다.
몽골의 최대 매력 포인트는 세계 최대의 땅을 점령하고 호령하던 칭기즈칸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유목민의 자취와 고비사막과 광활한 초원 등 독특한 자연 경관이다. 세계 역사상 지구의 가장 많은 땅을 차지했던 몽골. 그러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사 유적을 비롯한 문화 관광자원이 빈약한 것은 몽골족이 유목 민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