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마당

매화시

살메기 2014. 2. 14. 23:06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  도산 달밤에 핀 매화 --- 퇴계 이황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 매화 가지 끝에는 둥그렇게 달이 떴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 살랑살랑 미풍을 기다릴 것도 없이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 온 집안에 맑은 향기가 절로 가득하다.

 

 

 

 

당연히도 율곡 이이 선생 또한 매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읊은 한시를 남겼다.

매화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고 씻어내는 선생의 자세가 숙연하다.

매화는 마음을 비추어 주는 거울처럼 맑고 환하다.

 

매화를 보노라면 내 마음의 흠결이 다 비추어 보이는 것 같아

절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매화를 백날 본들 하등의 감동이 있을 리가 없다.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나서야 매화의 고절한 아름다움이

더 깊고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매화가 긴 겨울의 신산함을 견뎌온 우리네 삶의 스승인 까닭이다.

 

梅梢明月(매초명월) 매화 가지 끝의 밝은 달 ---- 율곡 이 이

梅花本瑩然(매화본영연) : 매화는 본래부터 환히 밝은데

映月疑成水(영월의성수) : 달빛이 비치니 물결 같구나
霜雪助素艶(상설조소염) : 서리 눈에 흰 살결이 더욱 어여뻐
淸寒徹人髓(청한철인수) : 맑고 찬 기운이 뼈에 스민다
對此洗靈臺(대차세령대) :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今宵無點滓(금소무점재) : 오늘밤엔 한 점의 찌꺼기 없네.

 

정민은 <한시 이야기>에서 조선 중기 시인

권필(1569, 선조 2년∼1612, 광해군 4년)이 쓴

보탑시(寶塔詩) 한 수를 소개한다.

시는 이색적으로 탑을 쌓아 놓은 듯 한 글자에서 시작하여

두 행마다 글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정제와 균절의 한시 형식에 익숙한 이에게

이러한 파격적인 시의 형태는 큰 충격이다.

 

시의 형태가 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

사설시조의 파격은 저리 가라다.

 

이상의 초현실주의시나 박남철의 실험시를 보는 듯하다.

조선 시대에 이러한 시를 쓸 수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氷骨 빙골

玉腮 옥시

臘將盡 납장진

春欲廻 춘욕회

北陸未暖 북육미난

南枝忽開 남지홀개

烟朝光掩淡 연조광엄담

月夕影徘徊 월석영배회

冷蘂斜侵竹塢 냉예사침죽오

暗香飛入金罍 암향비입금뢰

示憐的皪凌殘雪 시련적력릉잔설

更惜飄颻點綠苔 갱석표요점록태

從知勁節可比淸士 종지경절가비청사

若語高標豈是凡才 약어고표기시범재

愛幽獨尙容詩人看去 애유독상용시인간거

厭喧鬧不許狂蝶尋來 염훤료불허광접심래

試問登廟廊而調鼎鼐者 시문등묘랑이조정내자

何似西湖之上孤山之隈 하사서호지상고산지외

 

매화

얼음 뼈

옥 같은 빰

섣달 다 가고

봄 오려 하는데

북녁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꽃 피웠네!

아침 안개에 빛 가리고

저녁 달에 그림자 배회한다.

찬 꽃술 비스듬히 대숲 넘나고

향기는 날아서 금 술잔에 드누나!

고운 꽃잎 잔설보다 희고 안쓰럽더니

바람결에 날려 이끼에 지니 애석하도다.

아노라, 굳은 절개를 맑은 선비에 견주노니

그 우뚝함 말한다면 어찌 보통 사람에 비하리

홀로 있음 사랑하여 시인이 보러감은 용납하지만

시끄러움 싫어해 나비가 찾아옴은 허락하지 않는다.

묻노라, 조정에 올라 높은 정승의 지위에 뽑히는 것이

어찌 옛날 임포 놀던 서호의 위, 고산의 구석만 하겠는가?  

 

 

권필은 아까운 인재였다.

과거를 접고 시와 술로 소일하다가 몇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강화에서 유생을 가르치며 살았다.

 

광해군의 실정을 풍자한 시를 썼다가

친국(親鞫 :임금이 중죄인을 직접 신문하는 일)을 당하게 된다.

 

좌의정 이항복의 진언으로 사형을 면하고 유배를 떠났으나

도중에 얻어마신 술에 크게 취한데다

장독 杖毒이 올라 43살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떴다 한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올곧게 걸으려 했던

권필의 기개가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불우한 천재의 견고한 형식을 파격하는 결기를 수용하기에는

세상의 품이 더없이 좁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매화는 하릴없이 시인 자신의 슬픈 은유이다.

* 진사 임숙영任叔英이 광해군의 비妃 유씨 柳氏의 동생인 유희분 柳希奮등의 방종을 지적한

책문시責問詩 (잘못을 꾸짖어 묻는 시)로 말미암아 과거에 누락된 사실을 풍자하였다

 

 

 

 

역시나 매화의 참된 멋을 알기 위해서는 매화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그를 기리고 읊은 이들의 도저한 삶의 내막까지 들여다 봐야 한다.

매화와 눈과 詩와 인간의 삶은 더불어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이런 만남의 인연을 상생이라 하던가. 봄날 시린 눈 속에 핀 매화가 있어

궁핍한 우리네 삶이 서럽고도 고졸하니 아름답다.

 

雪梅 (설매) 눈 속의 매화 --- 방악(方岳 1199~1262)

有梅無雪不精神(유매무설부정신) : 매화 있는데 눈이 없으면 정기가 없고

有雪無詩俗了人(유설무시속료인) : 눈은 있는데 시가 없으면 속된 사람이네

薄暮詩成天又雪(박모시성천우설) : 해거름에 시 짓고 하늘에 또 눈 내리니

與梅倂作十分春(여매병작십분춘) : 매화와 더불어 봄을 마음껏 즐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