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휴의(萬事休矣)
만사휴의(萬事休矣)
萬(일만 만) 事(일 사) 休(쉴 휴) 矣(어조사 의)
모든 일이 다 끝났다는 말로, 어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음을 가리키는 말.
당(唐)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에는 5대10국(五代十國)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5대란 중원에서 흥망한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의
다섯 왕조를 말하고,
10국이란 지방에서 흥망을 거듭한 전촉(前蜀)·오(吳)·남한(南漢)·형남(荊南)·오월(吳越)·
초(楚)·민(종족이름민)·남당(南唐)·후촉(後蜀)·북한(北漢) 등 열 나라를 말한다.
이 중 형남은 형남 절도사였던 고계흥(高季興)이 세운 나라이다.
형남은 4대에 걸쳐 섬기는 나라가 망할 때마다
새로 들어선 나라를 섬겨 가면서 명맥을 유지했는데,
개조인 고계흥은 후량의 태조 주전충(朱全忠)에 의해 절도사로 임명되었으므로 후량을 섬겼고,
2대 고종회(高從誨)는 후당을, 3대 고보융(高保融)은 후주(後周)를,
마지막인 4대 고보욱(高保勖)은 송(宋)을 섬기다가 송에게 망해 흡수되고 말았다.
4대 보욱은 아버지 고계흥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
안하무인인 데다가 음란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보욱에 대해 역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계흥에게는 아들 종회(從誨)와 손자 보욱(保勖)이 있었다.
종회는 보욱을 남달리 귀여워했다.
특히 보욱이 어려서부터 병약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종회의 사랑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종회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보욱은 안하무인일 수 밖에 없었고,
게다가 허약하였으며, 음란하기까지 하였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안하무인에 버릇없는 보욱을 보고
주위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쏘아본 적이 있는데,
보욱은 그저 실실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전해들은 형남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爲萬事休矣)’ 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자부심도, 줏대도 없고 게다가 가치관마저 무너진 사람을
가지고는 나라의 운명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였다.
형남 사람들의 예견은 틀리지 않아서,
고보욱이 왕위에 즉위하자 바로 궁궐증축의 대 공사를 일으켜 백성을 괴롭히고
음란함이 극에 달해 기생들과 군사들을 풀어 혼음을 시키면서 그것을 보고 즐겼다 한다.
나라의 정세는 갈수록 쇠약해졌고
결국 수개월 후에는 나라를 잃게 되고 말았으니,
(‘만사휴’라는 말은) 그 사전 징조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만사휴의(萬事休矣)는 도무지 대책을 세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일이 틀어졌을 때 체념조로 사용된다.
[출전] 《宋史》 (荊南高氏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