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소식

쌀 한가마

살메기 2019. 1. 12. 08:46

 

 

어릴적 우리마을은 학교가 있는 읍내로부터

걸어서 30여분을 들어가야만 되는 두메산골이었다.

 

약80호가량이 이고랑 저고랑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동네에서 학교에 같이 다니는

동창친구들이 10 여명 되었다.

 

봄이면 하교길에 꽃 양탄자가 깔리고 노랑나비 흰나비 날던

자운영 꽃밭에 누워 두둥실떠가는 흰구름도 보고...

냇물에 들어가 물고기도 잡고 놀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테레비가 있는 시절도 아니니

집에 와서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자치기 구슬치기 연날리기 뺑이치기에

요즘같은 겨울이면 얼음 언 논에서 썰매타기,

용질로 툼벙 품어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 어죽 끓여먹기,

앞산 뒷산 뛰어다니며 올무나 싸이나로 산토끼, 꿩잡고 놀던 때였다.

 

그러던 친구들도 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서울, 인천, 천안 등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제 환갑 진갑 다 지나 돌아다 보니 10여명 동창들중엔

서둘러 하늘나라간 친구도 몇이나 되고...

 

나처럼 공직생활을 한 친구가 또 한명,

음식점을 크게하여 돈 많이 벌었다는 친구도 한명,

회사생활하다 퇴직한 친구도 두명,

서울로 상경하여 명문대까지 다닌 친구는 남미 온두라스인가 하는데서

뭔 사업 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감감무소식...

 

또 한 친구는 어느 대도시 이름있는

버스회사에서 중책을 맡아 잘나갔었는데...

뭔 일이 잘못되어 외국으로 나갔는지 죽었는지 이 친구도 감감무소식...

 

그리고 5명은 국민학교 졸업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수구초심이란 말처럼 나이 들수록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자주는 못가지만 그래도 일년이면 서너번은 고향길 나들이를 한다.

 

조부모님 산소도 고향에 있고,

막내숙부님과 사촌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구들 얼굴도 보고 술 한잔 나누고픈 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고있는 친구들이 너무 소중함을 느낀다.

 

그래도 그 친구들이 있어 언제라도 가면 불러내어

막걸리 한잔하며 옛 이야기 꽃을 피울수도 있으니까...

 

반겨줄 친구 한 명 없는 고향이라면 얼마나 쓸쓸할까.

 

얼마전 고향에 가서 친구들과 소주한잔 나누며

"고향에 너희들이 있어서 고맙다...

내가 자주는 못오지만

올 때마다 소주 한잔은 꼭 내가 사마" 고 했다.

 

다음날 아침 상경 하려는데 친구 한 녀석이 동네어귀

다리 앞에서 잠깐 좀 보자고 해서 뭔 일인가 했더니...

올 해 농사지은거라며 쌀 한가마를 내 차에 실어 주었다.

 

요즘은 힘들지 않게 기계로 농사짓고 쌀값도 얼마 안된다지만...

쌀 한가마를 덥석 내준다는게 어디 쉬운일일까....

 

그날 쌀 한가마와 고향친구 정까지

듬북 안고 올라오는길 너무 행복했다.

 

옛말에 굽은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더니....

비록 공부를 많이 못하고 객지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농사지으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고향의 친구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본다.

 

객지에 나가 돈 많이 벌어 성공한 친구들 보다,

크게 잘된 친구들보다

시골에 남아 농사짓고 있는 친구들이 가장 소중함을 느낀다.   

 

친구들아 고맙다.... 

또 만나 막걸리 한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