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차 이야기
시골 우리동네에서 학교까지는 오리길로 걸어서 30분쯤 걸렸다.
자갈길을 따라 학교를 오가는데 그게 그리 녹녹치 않았었다.
여름이면 왜 그리도 덥고 겨울이면 왜 그리도 춥던지, 하기야 기껏 해봐야 검정고무신에 나이롱 양말을 신고다니던 때이니 오죽했으랴.
우리마을 가장 깊숙한 곳 살목산 아래 보광골 초입에는 탄광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탄을 실어 나르는 탄 차가 하루에 대여섯 번 가량 마을을 드나들었다.
말하자면 덤프트럭 같은 화물차인데 그때는 차가 그리 많지도 않은 시절이니 도라꾸라고 불리는 탄차를 보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였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쩌다 탄 차를 만나게 되면 손을 들어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어떤 맘씨 좋은 탄 차 운전수는 차를 세우고 도라꾸 뒤 연탄이 새까맣게 묻은 바닦에 태워주는 때도 있었다.
우리들은 연탄에 옷 더럽혀지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마냥 신나 탄 차를 타고 금새 집에까지 오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포장도 안된 데다가 울퉁불퉁 개울 길을 가야하는 탄차 뒤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아이들을 태운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익히 알고있었던 탄차 운전사들은 우리가 아무리 손을 들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한번만 태워달라고 사정해도 잘 태워주지를 않았다.
그 중에서도 유독히 한번도 우리를 태워주지 않는 차가 하나 있었다.
동네 형들이랑 친구들은 그 차가 어찌나 미운지 어떻게 골탕먹일까 궁리를 하곤 했었는데...
어느날, 지금으로 말하면 짱이랄 수 있는 동네에서 가장 힘센 철수형이 우리를 불러모았다.
"야 느이덜 나좀 따러와봐!"
"왜요 형 어디가게?"
"와보먼 아니께 이루와" 하더니 동네 개울가의 탄 차가 다니는 길로 데리고 갔다.
동네에는 개울을 따라서 임시로 만든 찻길이 있었는데,
찻길은 개울을 따라서 이어지다가 꼭 차 한대 정도 지날 만큼의 넓이로 뚝 한쪽을 터서 길을 내어놓은 데가 있었다.
말하자면 거기가 아니면 차가 지날 데가 없는 것이었다.
철수형은 "야! 덕영이랑 택수는 집에가서 똥 한지게만 빨리 퍼와, 그리고 완기랑 인설이 춘호 두호 느이덜은 지금부터 돌 갔다가 여기다 쌓아"
우리는 그 제서야 철수형의 의도를 어렴풋이 나마 알 수가 있었다.
철수형은 어떻게 그 탄차를 골탕먹일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철수형의 명령에 따라 덕영이랑 택수는 집에 가서 똥 지게를 찾아 똥을 퍼오고, 나랑 인설이 두호 춘호는 부지런히 돌을 날라다 찻길을 막았다.
그러자 철수형은 그 막아놓은 돌위에 똥 한지게를 사정없이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야 느이덜 다 나 따러와" 하더니 우리 모두를 데리고 거기에서 300미터쯤 떨어진 콩밭으로 데리고가서는 밭가에 앉아 있다가 저 멀리서 그 미운털이 박힌 탄차가 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 밭고랑에 엎드려, 그리고 숨소리도 내지 말아라, 알었지!" 하고 명령하였다.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굼해 하던 우리는 모두 콩밭에 업드려서는 숨죽여 그 현장을 지켜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 탄차는 운명의 장소를 향해 다가오더니, 마침내 그 막힌 둑길 앞에 이르러서야 탄차는 멈추어 서고 운전사는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멀리서 보아 뭐라고 욕을 해대며 돌을 치우려는 듯 한데 막상 치우려고 보니 돌에는 똥이 바지게로 부어져 있어 쉽사리 손으로 치울 수도 없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쩔 수없이 손으로 똥 뭍은 돌을 치우고 개울물에 손을 닦고는 그 곳을 지났다.
마침내 우리는 복수를 해줬다는 승리감에 취해 낄낄거리며 웃었고,
철수형은 "야! 오늘 이거 누가 했다구 아무 한테두 말하먼 절대루 안되는기여, 알었지?" 하고 다짐을 놓았다.
이제는 철수형도 인설이도 모두가 떠나고 탄광도 폐광된지 오래되어 더 이상 탄차도 드나들지 않는다.
예전 탄광이 있던 보광골에는 둑을 막아 조그만 저수지가 생긴지 여러해고 탄차대신 낚시꾼들 차만 간간이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