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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와 용천백이

옛날 이야기

by 살메기 2008. 4. 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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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산에 진달래가 만개하여 가히 暢이다.

 


어렸을 적 진달래가 활작피면 앞동산은 산 전체가 붉게 물들다시피 했었다.

그러면 이웃 친구들과 어울려 진달래 꺾으러 낮으막한 앞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면 여기저기 진달래꽃 사이로 애무덤도 쉽게 볼수도 있었는데...

애무덤이라는게 일반 묘처럼 되어있는게 아니고

그냥 돌을 쌓아서 묘의 봉분처럼 형상만 만들어둔 것인데,

그게 진짜 애 무덤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여튼, 어릴적 시골에서 보던 진달래꽃은 키가 무릎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키에

소복소복하게 피어 색깔도 무척이나 선홍색으로 아름다워

요즘 서울 근교의 산에서 보는 진달래와는 종자가 다른건지 모르겠다.

 


어릴적 어느봄날...

그날도 친구들과 산에올라 진달래꽃을 따 먹으며 놀고 있었는데, 

친구중 하나가 하는말이 용천백이 (문둥병에 걸린 시한부 생을 사는 환자)가 산에 산단다.

 

용천백이는 병을 낫기 위해 어린 아이를 잡아 간을 내어 먹기 때문에 잡히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천백이한테 잡혀서 죽은 애 무덤이 여기저기에 있다는 무서운 말들까지...

 

그 말을 듣고는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냅다 한 걸음에 뛰어서 산을 내려온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실지로 용천백이가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천백이라는게 문둥병(나병) 환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어릴적에는 집집마다 밥이나 쌀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눈섭이 없거나 입술같은데가 이상하게 문들어진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게 용천백이들이고 가까이 가면 옮는다는 소문까지 있어서

무척이나 무섭고도 께름칙 했던적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55년생이니 6.25전쟁이 끝나고 2년후에 태어났는데,

상이군인들은 또 왜그리도 많았는지...    

 

손이 없어서 쇠 갈쿠리 같은걸로 한쪽손을 했거나,

한쪽 다리가 없어서 목발을 집었거나 한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나라를 위해 싸우다 이렇게 되었는데 도와달라"며 구걸을 하거나

통 성냥 같은 것을 팔기도 하였는게 말이 판매지 강매였었다.

 

그 쇠갈쿠리 같은 손을 가지고 다니며 통성냥이라도 팔아달라고 하면

순진한 시골사람들 괜히 험한꼴 안보려고

쌀 되박이라도 퍼주고 요구하는대로 팔아주곤 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이들이 모두 사라져 안보이게 되었는데...


그게 박대통령 들어오고 나서 원호청인가 생겨가지고

국가에서 이들에게 생계비를 지급하고 이들이 더 이상 민폐를 끼치지 못하도록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맞는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달래 활작핀 봄날에 용천백이랑 어릴적 추억을 생각나는대로 옮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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