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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술

이런생각 저런생각

by 살메기 2010. 3. 1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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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술은 고금을 통털어 수백 종류가 있으나 간단히 구분하여,

황주(黃酒)와 백주(白酒)로 나뉜다.


황주란 찹쌀이나 수수 등 곡물을 원료로,

누룩 등을 띄워 발효시켜 지게미를 걸러내는 것.


이때 사용하는 각종 원료와 촉매제로 인해 술이 색깔을 띄게 되는 바,

황(黃)이란 색깔있는 술이란 뜻이지 꼭 노란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황주는 일반적으로 도수는 10도 안팎으로 비교적 약하나

맛이 순하고 진하여 입에 쫙쫙 달라붙고 향기가 그윽하며

영양 역시 풍부하다.

소홍주(紹興酒)가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백주(白酒)란,

술지게미를 걸러내는 대신 특수 기구를 사용, 가열하여 증류시켜 만든다.

이 점에서 우리의 소주와 같다.

단지 중국의 백주(白酒)는 도수가 40도 이상 심지어 80도까지도 된다.

 

 

(우리 나라의 전통술 중에 안동 소주/ 문배주 등도 이런 종류임)

여기서 백(白)이란 하얀색, 즉 무색이란 뜻이다.

마오타이지우(茅台酒)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가 마셨던 중국집의 빼갈이 바로 백주(白酒)의 일종인데

고량(高粱/수수)으로 만들었다 하여 고량주라고도 부른다.

 


빼갈이란 한국식 발음, 중국어로는 바이갈(白乾兒),

즉 희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백주(白酒)임에는 틀림없으나

순도와 향기 그리고 도수에 있어서 삼류급인 것은

마신 후 뒷골이 아픈 것으로 능히 알 수 있다.


1974년 하북성(河北) 평산현(平山縣)에서 발굴된 한대 분묘에

술이 담긴 구리 항아리가 두 점 발견되었다.

술 단지를 여니 술은 이미 된죽 형태였으며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한다.


사실 주(酒)라는 글자도 따지고 보면 술을 담는 도자기 모양이었다.

이 닭酉자 옆에다 <삼-수水>변을 붙이면 바로 [술-주(酒)]가 됨)


이렇게 보면 중국술의 역사는 어지간히 오래된 셈이다.

중국술은 옛 부터 숱한 기록과 화제를 뿌리며 오늘에 이르게 되어

마침내 국가 공인 명주(名酒)가 탄생하게 된다.

 

 

 

 

 



우선 11종 명주 중에 다음은 이른바 백주(白酒) 계열...

 

▶모태주(茅台酒/마오타이지우)

 

 

▶분주(汾酒/훤지우)

 

 

▶오량액(五糧液/우리량예)

 

 

▶검남춘(劍南春/지엔난춘)

 

▶고정공주(古井貢酒/구징꽁지우)

 

 

▶여주노특주(濾州老特酒/뤄저우라오자오터지우)

 

 

▶강소양하대곡(江蘇洋河大曲/지앙쑤양허따취)

 

 

▶동주(董酒/똥지우)

 

이상 8종이다.

 

나머지 3종에서,

▶소흥가반주(紹興加飯酒/싸오씽쟈환지우)

▶용암침항주(龍岩沈缸酒/룽안츠언깡지우)는 황주 계열이고,

마지막, 죽엽청(竹葉靑/쭈예칭)은 약주 계열.

   

 

* 3백년 역사의 '마오타이지우(茅台酒)'

  

백주(白酒) 중에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술은

3백년 역사의 모태주 (茅台酒 / 마오타이지우).

 

주은래(周恩來)가 이 술의 품질 관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닉슨 대통령이 반했으며 북한의 김일성이 응접실에 비치했다는

모태주(茅台酒/마오타이지우)는 현재 대량생산에도 불구하고

역시 명성에 걸맞게 제법이 복잡하여 무려 8차례의 반복 증류와

3년의 저장을 거쳐 출고된다.


분주(汾酒/훤지우)는 산서성(山西省/산시성) 분양현(汾陽縣/훤양시엔)

행화춘(杏花春/싱후아춘)에서 생산되는 1천5백년 역사의 명주.

행화춘(杏花春/싱후아춘)은 중국 고전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지명이다.

당나라 두목지(杜牧之)의 시구 중..


 淸明時節雨紛紛 (청명시절우분분) 청명절기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

 路上行人欲斷魂 (노상행인욕단혼) 길 가는이 마음 쓸쓸하여 혼이 나갈듯 괴롭네

 借問酒家何處在 (차문주가하처재) 짐짓 술집이 어디 쯤인지 물어보니

 牧童遙指杏花村 (목동요지행화촌) 목동은 저 멀리 살구꽃 핀 행화촌을 가리키네


중국의 대표적 명시로 손꼽히는 위 시의 마지막 결구

목동이 가리켰다는 杏花村에서 착안하여 행화춘(杏花春/싱후아춘)이란 술 이름을

만든게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도수는 65도, 잔을 입에 대면 쏘는 듯 감기다가

목으로 넘어갈 때는 감미롭게 흩어진다.


한편 주당들의 귀에 익숙한 죽엽청(竹葉靑/쭈예칭)은

바로 이 술에 열가지 한약재를 담근 것이다.

약재가 우러나 황록색을 띠는데 본래의 분주(汾酒/훤지우) 맛은 죽고

대신 각종 약재가 어우려져 그 또한 마실만 하다.


황주(黃酒) 중의 일품은 역시 절강성(浙江省) 소홍(紹興) 지방에서

생산되는 소흥주(紹興酒/싸오씽지우).

이 술의 역사는 2천4백년 전으로 올라간다.


우리에게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로 유명한 구천(勾踐)이

회계(會稽)라는 곳에서 권토중래를 꾀할 때 술을 강에 부어

백성들이 함께 마시니 사기충천하였던 이야기가 고서에 보인다.

회계란 곳이 바로 지금의 소홍(紹興) 지방이다.


서예에 관심있는 분들은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첩(蘭亭帖)을 알 것이다.

왕희지가 문인들을 초대하여 곡수유상(曲水流觴)할 때 마신 술이 바로 소홍주이며

이때 즉석에서 쓴 名書帖이 난정첩(蘭亭帖(또는 蘭亭書)인 것이다.

술은 묵어야 제맛이지만 특히 소홍주는 묵을수록 진품이다.


청나라 말기만 해도 명나라 때 담근 소홍주가 있었다 한다.

백년 묵은 이 술은 호박색(琥珀色)을 띤 반고체 상태였는데

각설탕 크기로 조금 떼어내 수백배로 희석시켜 마셔도

그 맛이 기막혔다 하니 믿어야 할지 말지......


자고로 술과 문인은 각별한 관계였다.


중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양가집 청상과부를 꼬드켜

함께 술집을 차린 한(漢)나라의 대문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있었는가 하면,

학비를 술로 받은 양웅(揚雄)도 있었다.


손님 앞에서 부르는 권주가(勸酒歌)가 시원찮다 하여

자신의 애첩들을 손님 앞에서 차례로 셋이나 목자른

진대(晉代)의 갑부 석숭(石崇)이 있었는가 하면,

 

한서(漢書)를 안주 삼아 한 대접씩 들이킨 송대 문인 소순흠(蘇舜欽)도 있었다.


술 한말에 시 백편이었다는 이태백(李太白)도 있었고,

알딸딸한 취기(醉氣)에 자신의 울분을 실은 명시

비파행(琵琶行)을 지은 백거이(白居易)도 있었다.


중국문화의 주류는 儒家사상이었다.

유가는 사회질서의 규범을 중시했으며

중용의 태도를 행위의 모범으로 삼았다.


바로 이점이 주신(酒神) 숭배에서 비롯된 서양의 음주전통이

중국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까닭이며 일부 문인들의 과음 행위가

단지 에피소드로 오르내릴 뿐 현실에서는 경계되었던 이유다.


옛 중국에서의 술은 천지신명과 인간, 선조와 자손,

주인과 손님 사이에 단지 예의를 갖추는 하나의 매개물이었을 뿐

이른바 즐기는 음료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한 잔에 온화한 표정, 두 잔에 공손한 말씨,

석 잔에 유유히 물러난다'하는 잠언(箴言)이

유가서적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란 고해(苦海)라 했으니,

저 유명한 조조(曹操)같은 인물조차 감상스런 어조로

「인생의 근심 걱정 어떻게 풀거나, 오로지 해결책은 잔 속의 술이로다」

이렇게 읊조렸다.


중국 역사를 통해 수없이 쏟아져 나온 형형색색의 미주(美酒)와

권주가(勸酒歌)는 유가사상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간적인 한계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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