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때 78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유달리도 나를 귀여워 해주시던 할아버지셨는데....
아침에 학교갈때 까지도 아무렇지도 않으셔서
학교다녀오겠다고 인사드리고 학교 갔는데 그 사이에 돌아가셨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한참 놀다가 집에 걸어오는데,
밭살메기 뚝방길쯤 왔을때 동네 아저씨가 커다란 짐자전차를 타고 읍내에서 오시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대뜸 뒤에 타거라!" 하셨다.
영문을 몰하는 내게 그 아저씨는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어서 가자" 하셨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 아저씨 자전거 뒤에 타고 양지편을 지나 집앞 냇갈 어림에 다달았을때
우리집 바깥마당에는 커다란 채알이 쳐져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아 정말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나 보다 하고 그제서야 믿겨졌다.
당시 큰댁이 우리집에서 오리나 떨어진 읍내 장터에 양조장이었으니,
할아버지는 시간만 나시면 읍내 큰형님댁 양조장에 나가셔서
막걸리를 거나하게 들고 돌아오셨다.
내 어릴당시 이미 큰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계셨지만,
당숙과 당숙모님 입장에서는, 작은아버님, 시아주버님이신데,
막걸리 몇잔 잡숫는다고 돈 받았을리는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초여름이 시작되는 그날도 그렇게 읍내 큰형님댁 양조장에 나가셔서
막걸리는 거나하게 드신 뒤 오리길을 다시 걸어 돌아오시고는,
집앞 밭둑머리에 있는 죽은 밤나무를 잘라버리신다고
땡볕에 톱질을 하시다가 그 자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행복하게 돌아가신듯 하다.
당시 78세에 돌아가셨으니 장수는 아니지만 단명도 아닌
요즘으로 쳐도 평균 수명은 사셨고...
가족 누구에게도 고통을 안주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당신이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기분좋게 드시고
하고싶은대로 하시다가 가셨으니....
나이가 쉰을 넘기면서 어디 조금이라도 불편하다 싶으면...
혹시? 이거 큰병 걸린 징조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주변에 한참 젊은 사람이 몹쓸병에 걸려서 저세상 가는걸 보면,
나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할아버지처럼만 살다가 이세상 마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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