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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걸 다 기억하는 여자들.....(펀글)

이런생각 저런생각

by 살메기 2010. 10. 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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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 감동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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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니 아내의 입이 댓 발이나 나와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저를 향해 신경질적인 반응부터 보이더군요.

“ 왜 자꾸 내가 보낸 문자를 씹는 거야? ”

그제야 휴대폰을 살펴보니 아내로부터 2통의 문자가 와 있더군요.

진동으로 설정해놓아 미처 몰랐던 모양입니다.

[외식한지 오래됐는데 오늘 외식하면 안 될까?]

2통의 문자 내용은 모두 같았습니다. 문자를 보냈다가 답이 없으니 같은 내용을 다시 보낸 모양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내는 벌써 외출할 준비가 다 되었더군요.

화장을 하고, 향수라도 몇 방울 찍어 발랐는지 은은한 라일락 향기가 새어나왔습니다.

소파에 앉아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며 오늘은 정말 밥하기 싫으니 외식이나 하자고 합니다.

다른 날과 달리 목소리에 잔뜩 짜증이 섞여 있습니다.

“ 그러지 뭐. 매운탕을 먹든, 당신 좋아하는 들깨 수제비를 먹든…… 일단 나가자고.”

아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얼떨결에 이렇게 말하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습니다.

생일이나 기념일 같지는 않고…… 아내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축하할 일이나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힐끔 힐끔 아내의 표정을 살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저를 꽤나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안내했습니다.

“ 오늘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스테이크에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어.”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듯 아내는 밝은 웃음을 머금으며 제 팔짱을 끼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된 레스토랑과 아내의 입에 걸려있는 이해하지 못할 미소(?)가 저를 불안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분위기 좋은 곳에서 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시려면 돈이 좀 들 것 같다는 얄팍한 계산이 재빨리 머릿속을 달렸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은 때문에 갑자기 소심해지고 말았지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 당신, 들깨 수제비 좋아하지 않아? 왕만두에다……”

그 순간 저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헐크처럼 표정이 확 바뀐 아내는 이 인간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러냐는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지 22년째입니다. ‘

아차’싶은 생각에 재빨리 수습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오늘은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여 기분 좀 내고……, 다음에는 당신 좋아하는 거 먹자는 얘기지 뭐.”

“………”

“ 이게 무슨 냄새야? 양귀비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이보다 더 향기롭지 못할 거야.”

“………”

아내의 옷에 대고 킁킁거리며 라일락 향수 냄새를 맡는 저를 밀쳐내며 아내는 피식 웃고 맙니다.


종업원을 불러 스테이크와 와인 한 병을 시킨 아내는 저를 빤히 바라보더군요.

아내의 이 모습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한 눈길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이럴 때는 아내의 눈길을 피해 딴 짓을 할 수 밖에 없지요.

시선을 처리하지 하지 못해 레스토랑만 휘휘 둘러보는 저에게 아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

“……? ”

제가 알 리가 없지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았으면 아내의 손에 이끌려 이런 곳까지 왔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눈만 끔벅이고 있는 저에게, 무심해도 이렇게 무심한 인간이 있느냐며 책망을 해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이…… 당신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한 날 아니야.”

“……”

“거 왜…… S호텔 커피숍에서……”

그랬었나? 그게 그렇게 중요하단 말안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아내에게서 서운함이 뚝뚝 묻어났습니다.

제 기억에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프러포즈를 마련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단순히, 당신과 결혼하려면 부모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받아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아내는 그 날을 프러포즈 받은 날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내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제 입에서 처음으로 결혼 이야기가 나왔으니 프러포즈는 프러포즈인 셈이지요.

 

어쨌든 아내의 기분을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들은 때로는 사소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 오늘이 그날이구나. 잊어버려서 미안해. 미안… 정말 미안…

저의 과장 섞인 너스레에 금세 기분이 풀린 아내는 남자들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며, 고맙게도 저를 너그러이 이해해주더군요.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고 싶어 핑계를 찾다보니 이렇게 됐다며, 오늘이 무슨 날인지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아내를 위해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어주며 말했습니다.

“ 22년간 나 하나만 믿고 살아줘서 고마워. 앞으로 22년간은 당신만을 위해 살아갈게.”

닭살 돋는 저의 발언에 아내는 피식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습니다.


가만 살펴보니 아내의 눈가에 잔주름이 많이 생겼더군요.

모두 저로 인해 생긴 주름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많았을 아내에게 지금보다 백배, 천배는 더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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