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이 전국을 유람하던 중,
마침 평양에 대동강 변 乙密臺에 당도하여 배도 고프고 하던 차
우연히 회갑연 잔치자리를 발견하고는 잔치음식이라도 얻어먹을 요량으로 남의 잔치에 끼어들었다가
잔치의 주인공이자 평양부자인 임진사를 알게 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알게된 김삿갓을 林進士는 회갑잔치가 끝난 후에도 놓아주지 않았다.
평양에 머무는 동안 몇 달이라도 좋으니 자기 집에 있으라면서
詩文에 능한 平壤妓 竹香이를 불러 명승 고적들을 안내케 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그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어제까지 죽장망혜에 거지꼴 신세이던 김삿갓이
하루아침에 평양기생의 수발을 받는 귀한 신세가 된 것이다.
김삿갓을 모시게 된 竹香(죽향)은 花柳界에서 20이 넘으면 老妓라면서 겸손해하지만
詩書歌舞가 모두 능한 재기 넘치는 활달한 名妓였다.
김삿갓은 죽향이의 안내를 받으며 練光亭(연광정)을 비롯, 浮碧樓(부벽루), 望月樓(망월루),
風月樓(풍월루), 詠歸樓(영기루), 涵碧亭(함벽정), 快哉亭(쾌재정), 永明寺(영명사), 長慶寺(장경사) 등등,
평양명소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돌아보았다.
어느 날 練光亭(연광정)에 올라 술이 거나해진 김삿갓은 죽향에게
김삿갓 : 平壤妓生何所能 (평양기생하소능) 평양 기생은 무엇을 잘 하느냐?
죽 향 : 能歌能舞又能詩 (능가능무우능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시도 잘 한다.
김삿갓 : 能能其中別何能 (능능기중별하능) 잘한다 잘한다 하는데 그중에 특별히 잘하는 건 뭐냐?
죽 향 : 月夜三更呼夫能 (월야삼경호부능) 야밤삼경에 사내 불러들이는 재주가 제일이라오..... 하고 답했다.
김삿갓이 무릎을 치면서 너털웃음을 웃고,
그것은 차차 확인이 될 터이지만 먼저 시 한수 지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죽향은 江村暮景(강촌모경)이라는 제목의 시를 다음과 같이 읊는다.
千絲萬縷柳垂門 (천사만루유수문) 실버들 천만가지 문 앞에 휘늘어져
綠暗如雲不見村 (녹암여운불견촌) 구름인양 눈을 가려 마을을 볼 수 없네.
忽有牧童吹笛過 (홀유목동취적과) 목동의 피리소리 그윽이 들리는데
一江烟雨白黃昏 (일강연우백황혼) 부슬비 내리는 강에 날이 저문다.
김삿갓은 두번 세번 감격스럽게 읊어 보면서 누구의 시냐고 물었다.
정자 위에 걸려있는 어느 시보다도 멋진 이 시가 일개 기생의
自作詩 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김삿갓이었다.
죽향은 못내 서운한 듯 묵묵히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가
"제 비록 기생일망정 남의 시를 표절할 만큼 천박하지는 안사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술이 말끔히 깬 김삿갓은 다시 한 번 시를 읊어 보고
"과연 평양 기생이로구나" 하면서 죽향에게 정중히 거듭 사과한 후에
어색한 분위기를 얼버무리기 위하여 똑 같은 門(문 문), 村(마을 촌), 昏(어두울 혼)
석 자의 운자를 따서 연광정이라는 즉흥시 두 연을 연거푸 읊었다.
截然乎屹立高門 (절연호흘입고문)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萬頃蒼波直碧翻 (만경창파직벽번)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 물결 굽이친다.
一斗酒三春過客 (일두주삼춘과객)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했는데
千絲柳十里江村 (천사류십리강촌) 천만가닥 실버들 십리 강촌에 늘어졌구나.
孤丹鷺帶來霞色 (고단로대래하색) 외로운 따오기는 노을 빛 끼고 돌아오고
雙白鷗飛去雪痕 (쌍백구비거설흔) 짝지은 갈매기 눈발처럼 휘 나른다.
波上之亭亭上我 (파상지정정상아)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 위에 내가 있어
坐初更夜月黃昏 (좌초경야월황혼)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연광정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 풍경을 바라보며
죽향의 시에 화답한 시였다.
김삿갓의 시를 몇 번이고 거듭 읊어 본 죽향은 어느새 시에 취한 듯
그늘졌던 낯빛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기쁨이 넘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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