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휴가기간동안 그저 하릴없이 나팔만 불어대는 나를 보고 안돼보였던지 당일치기로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자는 집사람의 권유에 집사람과 둘이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고향인 광시- 규암-서천 한산- 무창포-대천 천수암-서울로 돌아오기로 대략 예정하고 출발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다 평일이라 그런지 차도 그리 많지않아 오전 10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지만 오후 1시반쯤 해서 고향인 광시에 도착했다.
예전보다 더 커진 한우정육점들이 대낮인데도 찻길 양 옆으로 일제히 화려하게 간판불을 켜고 손님맞기에 바쁘다.
고향이라지만 매번 그냥 지나치기만 했지 고기값이 엄청 비싸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실제로 들어가서 사 먹어보지는 않았었는데, 이참에 맘먹고 집사람과 한번 맛을 보기로 하고 한집을 골라 들어갔다.
한우 모듬 2인분(1인분 2만5천원)을 시키니 우선 밑반찬과 실다란 접시에 쇠간과 천엽, 쇠고기 육회를 조금 내어주었다.
시장하던 터라 메인 음식인 한우 모듬이 나오기도 전에 쇠간과 천엽을 거의다 비워갈 즈음해서 모듬고기가 나왔다.
비싸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고기는 보들보들하고 맛이 있었다. 암튼 맛있게 배를 채우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
그렇게 한우고기를 맛보고는 한산으로 출발하던중 광시에서 십리쯤 떨어진 비봉에 이르럿을 때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 안개에 묻힌 산을 보니 마치 동양화 그림 한폭을 보는듯 하다
문득 예전에 낚시왔다가 그 경치에 반해버린 산속 이름없는 저수지가 생각나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원흥리인지 하는 동네 위쪽 산속 깊은곳에 자리한 저수지는 글자그대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듯... 고요하고 맑기가 수정같고 마치 무슨 괴물이라도 당장 튀어나올듯한 정경이다.
그 깊은 산중에도 누가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으니 맑은공기와 고요한 자연경관들..무릉도원이 따로 없을듯 하다. 좀 무섭고 외로울것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저수지를 내려오는길... 저수지 아래 들녁에는 벌써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했고 이른벼는 이제 수확할때가 가까이 온듯 하다.
하기사 추석이 이제 한달도 안남았으니...
다음은 한산으로 출발...
한산 하면, 그 유명하다는 한산 세모시, 소곡주와 함께 가정 이곡선생과 목은 이색선생 부자로 이어지는 한산이씨의 본향이 아니던가....
청양-규암을 거쳐 한산에 도착했다.
예전에 한번 사본 경험이 있는 한산 소곡주(素穀酒) 담는집을 예고도 없이 3년만에 불쑥 다시 찾았더니 그때 그 할머니가 지금도 소곡주를 담가 팔고 계셨다.
소곡주는 글자그대로 `하얀곡식으로 만든술` 이라는 뜻이니 하얀곡식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쌀이고 쌀로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하여간 술 좋아하는 나로서는 먹어본 술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말하고 싶은게 소곡주다.
서울의 대형마트에서도 팔기는 하지만 한산의 그 할머님이 직접 담가 파시는 그 술맛하고는 좀 차이가 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라고나 해야할까... 일명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는데 마실땐 맛나게 마시지만 나중에는 술에 취해서 일어나지를 못한다 해서 붙은 말이라는 것이다.
소곡주를 두병 달랬더니 예전과 다름없이 커다란 냉장고에서 유리로 된 옛날 댓병에 담긴 소곡주를 내어 주신다.
댓병 한병에 15,000원이니 그리 비싼것 같지도 않다.
예전엔 정종술도 모두 저 유리병에 담겨 있었고, 전기가 들어오기전 장터에서 석유를 사올때 요긴하게 사용되던 석유병이었는데 그 댓병에 술을 담아주시다니...
술과 함께 옛 추억도 함께 덤으로 받아온 느낌이다.
소곡주 2병을 차에 싣고는 보령 무창포로 향했다.
무창포에 도착하니 왼종일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치고 좀 서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철지난 바닷가라는 노래도 있듯이 얼마전까지만해도 사람들로 북적였을 바닷가에는 고요만이 있었다
준비해간 외투를 꺼내입고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누군가가 내어다 놓은 주인없는 의자 하나가 외로이 바닷가 모래위에 놓여있어 그 쓸쓸함을 더해준다
저멀리 수평선 위로 구름속에 비치는 황혼이 아름답다.
가까이서 보니 거의가 낚시배인듯 한데, 비가와서 그랬는지 배들은 모두 정박해 있고 사람모습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만에 바닷가에 왔다가 그냥가면 서운할것도 같고하여 가까이에 있는 횟집을 찾아들어갔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해물값도 좀 싸진듯한 느낌이다.
전어구이 조금하고 키조개 조금을 시켜먹고는 방파제 구경을 나섰다.
마침 낚시꾼 몇이 보이길래 낚시질 구경좀 하려고 다가가는데 방파제 세멘트 바닦에는 온갖 쓰리기들이 널려있다.
낚시 후에 쓰레기를 각자 다 가져간다면 그럴일이 없겠지만 엉킨 낚시줄에 지렁이를 담았던 스치로폼 곽, 비닐봉지, 음식물 찌꺼기, 각종 쓰레기 봉투에 한마디로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호주 뉴질랜드 여행갔을 때 그곳 항구들은 얼마나 깨끗하던지....
이는 국가나 누가 관리를 해주기 때문이라기 보다 국민들 모두가 공공장소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면 안되다는 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나라가 곧 국민소득 2만불의 선진국이 된다고들 말하지만 이런 의식구조들 부터 고쳐지지 않고서도 과연 선진국이 될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방파제 등대주변 쓰레기들....
방파제 위에 나뒹구는 스치로폼 지렁이곽과 엉킨 낚시줄들....
여기저기 보이는 스치로폼 지렁이곽들...
낚시줄과 낚시포장봉지들....
시간이 되면 대천의 천수암을 들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 그냥 대천 시내에서 찜질방 사우나에 들러 잠시 피로를 풀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3시...
이렇게 나의 휴가는 재미없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