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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재미

옛날 이야기

by 살메기 2007. 3. 2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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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살던 시골에는 고등학교 다닐무렵 쯤에 전기가 들어왔던 듯합니다.

 

전기조차 안들어 오니 물론 TV같은거는 아예 생각도 못하던 어린 시절,

고작해야 라디오를 통하여 뉴스도 듣고 연속극도 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도 라디오 약(배터리)닳는다며 할머니께서는 얼른 연속극만 듣고는 꺼놓은 다음 

벽장속에 넣어두고 혹시 누가 켜나 하고 항상 감시를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골 농촌일상이라는게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일로 바쁘기 마련이지만,

겨울철에는 마땅히 할일이 없으니

농촌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약 서너달 가량의 정기휴가인 셈이었지요.  

 

하는 일이래야 기껏 동네산에 올라 나무한짐 해오는게 고작이고, 

그 다음에는 할 일이 없으니 낮에는 동네 툼벙을 품어

물고기 잡아 어죽쑤어 먹기, 

가까운 산에 올라 덧 놓아 토끼잡기, 

콩에 구멍파 싸이나 넣어 꿩잡기, 

저녁이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심심풀이 나이롱뽕 화투로 막걸리나 뭐 사다먹기,

이런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네 툼벙을 품는 날이면 동네 잔치하는 날입니다.

 

품는다는게 용질을 해서 물을 퍼내는 것인데,

사각 양철통을 삼태미처럼 만들어서는 양쪽에 새끼줄을 연결하여 

두사람이 새끼줄을 잡고 물을 퍼올리는 것입니다.

 

 

용질은 원래 가뭄때 툼벙의 물을 퍼올려 논에 물을 댈때 하는 것인데,

말로는 쉬워보여도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두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또 상당한 요령이 필요한데,

한참 용질을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비오듯하고

허리아프고 어깨아프고 장난이 아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내 일도 안하고 놀기만 하던 농촌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이 적당한 운동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동네사정을 모두가 빤히 알고있는 처지니

"누구네 논 툼벙에 고기가 많다더라,

누구네 툼벙은 재작년에 품고 아직 한번도 안품었으니 지금쯤이면 고기가 많을 것이다" 하고 

물고기 많은 툼벙을 정확하게 골라 물을 퍼내는 것입니다.

 

그럴때 쯤이면 동네 아이들은 물론 나이드신 노인들께서도 나오셔서 용질하는거 구경하시며,

마치 어르신들 어릴적 추억을 더듬듯이

"앗따 물괴기 많이 들었겄다. 빨리 퍼! 젊은놈들이 왜 그리 힘을 못써!"

하시며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당시는 농약도 거의 안쓰던 요즘으로 말하면 웰빙 무공해 농법이던 시절이니

툼벙마다 물고기가 가득하여 한번 품어내면 

붕어, 미꾸라지, 뱀장어, 메기, 심지어는 게 까지....

 

바께스로 한가득 잡아서는 개울에 가져가서 여럿이 둘러앉아 배따고

아무네 집이나 한집 골라들어가 커다란 무쇠솥에 통째로 집어넣고는

고추장풀고 국수넣어 어죽을 끓여냅니다.

 

 

 

거기에다 쇠주나 막걸리 한잔 곁들이면 그 맛이란 안먹어본 사람은 모릅니다.      

 

동네 어르신들 모두 모셔오고, 

아주머니들도 모두 모여 같이 음식 준비하고 그야말로 동네 잔치가 벌어지는 거지요.   

   

요즘에도 어쩌다 겨울철에 시골에 내려갈 때면 옛 추억에 빠지게 되고, 

고향에 남아있는 친구들 불러내어 툼벙이나 품자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이제는 툼벙도 모두 사라지고 오염도 많이되어

그 흔하던 물고기마저 거의 사라진듯 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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